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까디시야 전투 (문단 편집) === 넷째 날 === 하루 낮과 밤을 내내 싸운 양측의 군대는 지칠 대로 지쳐 도저히 더 싸울 수 없는 지경이 된 새벽녘에서야 전투를 그만두고 휴식을 취했다. 그때까지도 승패를 가리지 못한 것이다. 이때 까까가 "이제 조금만 더 싸우면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병사들을 독려하며 좌익을 이끌고 공세를 재개했다. 이에 아침부터 또다시 격전이 시작되었으며, 페르시아군은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페르시아군 쪽으로 강력한 모래바람이 불었고, 이 때문에 페르시아군은 더욱 불리해졌으며 이슬람 기록자들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찬탄하고 있다. 까까는 마침내 페르시아 전열을 돌파하여 로스탐의 지휘부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로스탐은 전사했다. 혼란스러운 격전의 와중이라 로스탐이 전사한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페르시아군은 전투에 정신이 팔려 총사령관이 전사한 줄도 미처 모르고 반격을 시도해 이슬람 군대를 다시 몰아냈다. 그러나 전열을 재정비한 이슬람군은 다시 총공격을 개시했고, 총사령관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한 페르시아군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대열을 유지하며 퇴각하고, 일부는 공황상태에 빠져 패주하고, 일부는 악에 받혀 결사항전하다 최후를 맞았다. 그 결사항전한 장군들 중에는 좌익을 지휘하던 갈레누스도 있는데, 그가 강의 유일한 다리를 지키고 있었으므로 적지 않은 패잔병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고대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페르시아군은 패주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때 이슬람군과 함께 왔던 아랍인 여성들이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페르시아군 부상병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모두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출처: 이슬람제국의 탄생/ 톰 홀랜드 저/ 이순호 역/ 책과함께/ 2015년 4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